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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소설

반려견과 함께 살아보기(11) 산들, 두 번째 목욕하는 날

by 피터 스토리 2022. 9. 5.

 

 

순순히 욕실로 들어오는 산들, 기특하다!

 

 

산들은 구름방석에 들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가끔 목이 마르거나 간식이 먹고 싶을 때는 나와서 칭얼거립니다. 아시죠? 처량한 눈빛으로 졸졸 따라다니거나 주방에 가 있으면 앉아서 마냥 기다립니다. 결국 간식을 주면 쪼르르 집으로 물고 가서 한동안 본 척도 안 합니다. 볼 일 다 봤다는 거겠죠.

 

밖에는 비가 내립니다. 오늘은 산책을 나갈 수 없습니다. 제주, 부산권은 북상 중인 태풍 힌남노로 잔뜩 긴장하고 있습니다. 창문을 모두 닫고 제습기를 켭니다. 습기를 어느 정도 제거해야 컨디션이 살아날 것 같습니다. 다습한 환경은 저나 산들에게 저기압을 동반합니다. 서로 인상 쓸 일이 쉽게 발생하죠. 이때는 제습은 물론 조명도 가급적 밝게 하는 게 좋습니다.

 

어젯밤 구름방석을 산들의 집에 넣어주었습니다. 아직도 문을 닫으면 “빨리 문 열어!”라고 소리칩니다. 아무도 없을 땐 혼자서도 잘 뛰어넘지만 제가 있을 때는 단 한 번도 펜스를 뛰어넘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영리한 녀석이죠. 혹시 제가 문을 닫기라도 하면 마치 부려먹듯 문 열라고 성화입니다.

 

날씨 탓인지 오늘은 산들이 집에만 있습니다. 가끔 서재에 와서 제가 일하는 걸 보고 다시 돌아가기도 합니다. 커피가 떨어져 거실로 나가니 산들은 심심했는지 졸졸 따라옵니다. 그리곤 당연하다는 듯 서재까지 따라 들어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기지개를 켜며 녀석을 보니 구름방석에 들어가 제 몸을 구석구석을 핥고 있습니다. ‘저 녀석 목욕할 때가 됐는데...’ 그렇습니다. 목욕할 때가 된 것입니다. 지난 며칠 동안 생각은 했으면서도 차일피일 미뤘던 것입니다.

 

 

일손을 멈추고 녀석의 목욕을 준비합니다. 샴푸, 빗, 타월, 드라이기를 점검합니다. 정작 문제는 녀석을 욕실까지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지난번 목욕 때는 간식의 유혹을 뿌리치면서 저항했던 녀석이라 조금 걱정되기도 합니다. 물론 이번엔 간식이고 뭐고 없습니다. 딱 한 번 얘기해서 말을 안 들으면 무조건 안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번의 경험이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산들, 목욕하자~” 한 마디에 순순히 따라 들어옵니다. 녀석 스스로 생각해도 목욕할 때가 됐다는 걸 아는 것인지, 아니면 좀 전에 서재에 들어와 온몸을 핥으며 목욕 좀 해달라며 사인을 보낸 것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순순히 잘 따릅니다. 최근에 이렇게 순종적인 모습은 낯설 정도입니다.

 

욕실에 들어와서도 얌전합니다. 샴푸를 듬뿍 묻혀서 미온수와 함께 온몸에 골고루 바릅니다. 좌우로 몸을 털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알아서 하라는 듯 제가 시키는 대로 방향까지 틀어가며 목욕 삼매경에 빠져듭니다. 저 역시 지난번 목욕에서 미흡했던 부분을 알았기에 이번에는 구석구석 꼼꼼하게 목욕을 시켜줍니다. 경험이 중요합니다.

 

이번 목욕은 꿍짝이 잘 맞습니다. 녀석의 가려운 데를 알아서 긁어주는 것을 느낄 정도입니다. 얼굴을 먼저 깨끗이 닦아주고, 다리는 손으로 가볍게 쥐어 물기를 제거합니다. 타월로 녀석의 온몸을 감싸 물기를 털어내고 드라이기로 말립니다. 100% 건조는 아마추어인 저로서는 무리입니다. 하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물기를 날려줍니다. 녀석도 개운한지 얌전하게 따라옵니다. 아, 산들은 목욕이 끝나고 난 뒤 만족스럽다는 듯 좌우로 크게 몸을 텁니다. 지난번 목욕과는 사뭇 다른 결과입니다.

 

이번에는 산들이 얌전하게 욕실에 들어와 저항하지 않고 목욕했습니다. 목욕을 마친 후에는 이리저리 뛰며 장난도 칩니다. 거실과 서재를 오가며 가벼운 뜀박질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합니다. 잠시 우리 둘 다 미친 것이지요.

 

 

지난번엔 어설픈 솜씨로 목욕 후에도 녀석의 냄새가 조금 남았었는데, 이번에는 코를 가까이 대고 맡아봐도 향긋한 샴푸 향만 조금 날 뿐 깔끔합니다. 비 오는 날의 목욕이라 기분이 더욱 상쾌해집니다. 산들의 건조 상태를 확인하고 간식으로 시원한 무 몇 조각을 줍니다. 지난번과는 확연히 다른 산들의 목욕, 만족합니다. 다음에는 더 잘하겠지요.

 

 

 


가려워서 잠깐 긁었는데 목욕까진...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비도 오고 몸이 좀 간지러워서 몇 번 긁었다고 목욕을 시켜! 가뜩이나 컨디션 난조를 보이는 날인데... 자꾸 냄새난다고 하는데, 아니 너는 냄새 안 나니. 좀 편하게 살자고. 이 인간 일부러 그러는 거지. 자꾸 귀찮게 굴면 나 진짜 화낸다.

 

같은 남자끼리, 정조준이 잘 안 되면 빗나갈 때도 있는 거야. 뭐 배변패드에 싸니 안 싸니 해가며 흉보는데 너무 그러지 말라고. 생리현상 가지고 개격 모독까지 해서는 안 되는 거야. 어어? 이거 왜 이래! 욕실문은 왜 열어놓은 거야. 이번엔 간식도 없네...

 

오호~ 샴푸 향, 타월, 드라이기... 꽤 준비해 놨네. 이거 지난번과 다른데. 오늘 목욕 한 번 해봐! 가만있어봐, 내가 먼저 들어갈게. 욕실이 훈훈하네. 잘했어~

 

실력이 제법 늘었는데, 그래 거기. 거기가 가려웠어. 천천히 해. 목욕은 내가 하는데 이 인간이 더 신나는 거 같네... 눈에 물 안 들어가게 조심하고. 샴푸는 그만 됐고, 따뜻한 물로 화끈하게 몸에 뿌려줘! 어허~ 시원하구먼. “청산리~ 벽계수야~” 조용하라고? 알았다, 알았어. 어떻게 된 인간이 풍류를 몰라...

 

드라이기는 좀 더 떨어지게 해서... 그래 됐어. 아, 시원하다. 그래 오늘처럼만 해. 개운하고 좋네. 그만 나가자고. 문 좀 열라니까! 뭘 더 닦아, 이 정도면 됐어... 아, 그리고 오늘은 간식 안 주나. 무? 그거 좋지. 빨리 가져와!

 

자네도 대충 마쳤으면 몸도 풀 겸 운동 좀 할까? 자, 날 따라와~ 층간소음 걱정할 거면 그냥 있고. 난 좀 뛸 거야. 그래, 잘 생각했어. 그렇게 조심조심 뛰면 되잖아. 아, 상쾌한 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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