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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소설

반려견과 함께 살아보기(7) 배움은 즐거워

by 피터 스토리 2022. 8. 31.

 

말 잘 듣는 산들이

 

 

늦은 밤까지 일한 탓에 오늘은 정오가 다 되어 일어납니다. 산들이는 거실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다 저를 보고도 반가운 표정이 아닙니다. 마치 ‘뭔 늦잠을 이렇게 오래 자냐!’며 흉보는 것 같습니다. 달려와서 안겨도 모자랄 판에... 어라? 이젠 소 닭 보듯 합니다. 평소 말 잘 듣는 녀석이 가끔은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엉뚱한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이젠 괜찮습니다. 속내가 보이니까요. 물은 조금 남았고, 사료를 보충해 줍니다.

 

평범한 오후입니다. 산책에 나섭니다. 새로운 산책코스를 찾았지만 그냥 평소대로 가던 곳만 갑니다. 습관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녀석도 별 탈 없이 잘 가고 있습니다. 늘 하던 곳에 마킹하고, 큰일도 봅니다. 그리고 벤치에 올라와 제 옆에 앉아 휴식을 취합니다.

 

어제는 밤늦게까지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하늘이 맑고 높습니다. 완연한 가을입니다. 혹시 잊을까 봐 오늘도 “앉아~” “이제 먹어~”를 시도합니다. 잘 따릅니다. 똑똑한 녀석입니다.

 

 

 

홍당무를 간식으로 준비했습니다. 먹지 않고 앉아서 기다립니다. 영특합니다.

 

“이제 먹어~”라는 말이 떨어지자 오도독오도독 홍당무를 씹어 먹습니다. 이 녀석 혹시 조상이 말이나 염소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이제 한 가지만 더 가르치면 되는데...

 

 

내 말을 잘 듣는 인간이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더 기특한 것은 내 지시에 즉시 반응을 보이려 노력한다는 것. 앞발로 몇 번 긁어주면 이내 내 머리나 배를 가볍게 쓰다듬는다. 가끔 일에 빠져있을 때는 모르는 체하는 것인지, 아님 진짜 모르는 것인지 반응을 보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 정도는 이해해줘야지. 서로 바쁘게 사는 세상, 어찌 나만 바라보게 하겠는가. 아무튼 마사지받기가 갈수록 쉬워진다. 뒤늦게 살맛 난다.

 

밤새 뭘 했는지 이 인간은 해가 밝았는데도 도무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나야 워낙 부지런하니까 새벽부터 일어나 거실과 베란다를 오가며 시간을 보냈지만... 게으른 농부 석양에 바쁘다고 늦게 일어난 인간이 은근히 바쁜 척하네. 아무래도 산책에 데리고 가야 할 것 같다.

 

오후 산책은 즐겁다. 솔솔 부는 초가을바람에 콧구멍이 뻥 뚫리는 것 같다. 마킹도 어느 정도 했고, 숲에서 시원하게 큰일도 본다. 늘 그렇듯 졸졸 따라다니며 내 흔적을 겸손하게 봉지에 담는 인간이 기특하다. 이제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물론 한 가지가 남았지만...

 

그럼 그렇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겠나... 산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뭐가 피곤한지 나무벤치에 앉아 쉬고 싶은 모양이다. 그리곤 손바닥으로 벤치를 두드리며 올라오라고 한다. 잠시 어이가 없었지만 불쌍한 인간 기죽이기 싫어서 훌쩍 벤치에 오른다. 그래, 나도 휴식이 필요하지...

 

하늘 참 좋다~ 곧 추석이겠지. 이제 한 가지만 더 가르치면 되는데, 저 미련한 인간이 알아들을지 모르겠네...

“멍멍, 간식 좀 가져와!”

역시 못 알아듣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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