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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소설

반려견과 함께 살아보기(6) 새로운 산책코스

by 피터 스토리 2022. 8. 30.

 

산들, 도전정신은 살아있다!

 

 

오후, 한가로운 시간에 집을 나섭니다. 아무래도 제가 나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산들의 요청을 따랐다고 하는 게 맞을 겁니다. 집에만 있기 심심한지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 걸로 봐서 ‘빨리 산책 가자!’라고 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녀석의 시그널인 앞발로 현관문을 긁고 있는 걸 보니 빨리 가자는 뜻이지요.

 

오늘도 산들이 앞장섭니다. 늘 같은 코스로 가기에 습관적으로 따라갑니다. 밖에만 나오면 깡충깡충 뛰며 신나서 어쩔 줄 모르지만, 신기한 것은 늘 같은 곳에 마킹(Marking, 소변으로 영역 표시)하는 겁니다. 졸래졸래 녀석을 따라 우리만의 코스로 나아갑니다. 오늘은 큰일을 보지 않는군요. 오전에 워낙 큰 것을 봤기에 그러려니 합니다.

 

코스를 반 이상 돌았더니 잠시 쉬고 싶습니다. 녀석이나 저나 체력을 고려해야 할 나이입니다. 그런데 녀석은 ‘난 다르지...’라는 듯 계속 앞장서 나갑니다. 그리곤 새로운 코스를 찾은 듯 자꾸만 엉뚱한 곳으로 저를 이끕니다. 아, 그렇군요. 멀리 어린이놀이터가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늘 가는 단지 내 작은 중앙공원에서 잠깐 쉴 생각입니다.

 

벤치로 가려니 녀석은 가만있질 않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오늘만큼은 녀석에게 지고 싶지 않습니다. 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녀석은 귀찮아하는 제 표정을 눈치챘는지 일단 멈춥니다. 그리곤 벤치에 올라와 제 곁에 바짝 붙어 앉아 저를 달랩니다. 일단 제 마음부터 돌리려는 거 같습니다. ‘우리 너무 한 우물만 파는 거 아니냐. 도전정신을 갖고 새로운 곳으로 가보자’라는 것이죠. 저는 모른 체합니다.

 

그렇게 잠시 쉬고 있지만 녀석은 변함이 없습니다.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전략으로 제가 녀석을 따르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죠. 결국... 귀찮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녀석을 따라나서기로 합니다. 녀석은 ‘그럼 그렇지. 내 말을 잘 들어야지’라는 듯 깡충거리며 신바람이 납니다. 예상대로 녀석은 어린이놀이터로 향합니다. 놀이터의 부드러운 바닥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리저리 뛰며 마치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합니다. 나잇값도 못하고... 저렇게 좋을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혼자 노는 게 싫증이 났는지 다른 곳으로 가자고 재촉합니다. 변덕은...

 

이번엔 아파트 단지 정문으로 향합니다. 큰길까지 나가려는 듯합니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면~’이란 졸업식 노래 가사가 떠오릅니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 넘어지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에 이르자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아무튼 산들은 자기가 끌면 제가 따라온다는 걸 아는 녀석입니다. 목줄이 팽팽해지도록 저를 끌고 앞으로 앞으로 나갑니다.

 

드디어 큰길로 나왔습니다. 산들은 잠시 차도와 인도 경계지점에서 멈춥니다. 그러더니 인도 안쪽으로 앞서 나갑니다. 안전하게 가겠다는 거죠. 똑똑합니다. 귀신도 찜 쪄 먹을 정도이니 제가 이길 재간이 없습니다. 그저 따라가는 수밖에요. 결국 아파트 단지 외곽을 반이나 도는 엄청난(?) 일을 해냅니다. 대단한 산들, 똑똑한 산들, 도전정신 충만한 산들, 장합니다. 뒤늦게 바쁜 하루입니다.

 

 

Episode

“앉아~” “이제 먹자~”

 

우연히 알게 된 산들의 습관. 간식을 줄 때마다 달려들어 불편했는데, 한 번은 “앉아서 얌전히 기다려~”라는 말에 즉시 앉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아하~ 어릴 때 교육을 잘 받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후 간식을 줄 때마다 “앉아~”라고 말하면 얌전히 앉아서 기다리는 모습이 기특하고 대견합니다. 요즘은 가만히 앉아있는 산들에게 “이제 먹어~”라고 말하면 그제야 간식을 먹는 걸 보니 참 신기합니다. 함께 성장하는 것 같아 반갑기도 하고요. 주인에게 교육을 잘 받은 거 같습니다.

 

 

 


인간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다

 

 

역시 게을러...

내가 나가자고 신호를 보내면 즉시 알아들어야지. 현관까지 가서 문 열라고 몇 번이나 신호를 보내야 해! 쯧쯧... 아니, 척하면 알아들어야 할 거 아냐. 그걸 몰라?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데 저 인간은 도통 도움이 안 되니...

그래, 그거야! 이제야 문을 여는구먼. 내 오늘 새로운 세상을 보여줄 테니 잘 따라오라고.

 

 

엘리베이터 아직 안 올라왔다. 조금만 더 기다려... 이 인간은 밖에 나오니 성격 급해지네... 

 

 

역시 밖에 나오니 기분이 상쾌해지는군. 마킹은 다 끝냈고. 보나마나 벤치에서 쉬자고 할 텐데... 가만있어봐! 자네, 어제 같은 오늘이 지루하지 않아? 다른 곳으로 가볼까? 아니, 뭐 큰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자네에게 특별한 부탁을 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내가 가는 대로 따라오기만 하면 돼. 에이~ 꼭 쉬었다 가야겠어?  

 

 

된장! 오늘은 올려주지 않아도 돼! 왜 말을 안 듣는 거야. 새로운 곳으로 가보자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 알았어, 알았다니까. 일단 자네가 힘든 거 같으니까 잠깐 쉬자고...

 

 

좋니? 이 인간은 살살 달래줘야 말을 들으니... 근데 너무 가까이 붙어 앉았나? 이 인간 착각하면 안 되는데... 자네 여기서 살림 차릴 거 아니면 그만 일어나지. 일어나라니까! 

 

 

그래 저기야! 뭔가 컬러가 다르잖아. 

 

 

오우~ 이 부드러운 바닥, 느낌 좋아~

 

 

자네가 잘 기억해 둬. 다음부턴 우리 산책 코스에 반드시 넣는 거다! 오우~ 분위기 좋아. 

 

 

이번엔 좀 큰길로 가보자고. 무서워하지 말고 잘 따라와. 겁내지 말라니까! 자넨 너무 소심해서 탈이야.

 

 

잠깐! 여긴 조금 위험해 보이는데. 신호 바뀌면 차들이 쌩쌩 지나갈 테고... 자넨 내 뒤에 잘 붙어있도록 해. 

 

 

그래, 그래. 잘 따라오라고. 아, 이거 산책길에 혹 하나 달고 다니는 기분이네. 이 길 처음이지? 자네 오늘 횡재한 줄 알라고. 그래, 그래, 자넨 지금이 좋을 때야.  

 

 

어이~ 인간, 이제 거의 다 왔어. 뭐, 개구멍 같다고? 자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나. 여긴 엄연한 후문이라고 후문!

 

 

음~ 여긴 부드러운 곡선의 산책로네. 그래 이런 코스가 좋은 거야. 술 한 잔 마시고 걸으면 딱 어울리겠는 걸. 그렇다고 자네에게 술 마시고 산책 나오란 얘기하는 거 아냐. 힘들다고? 엄살은... 알았어. 오늘은 여기까지...

피곤한 하루다.

 

 

Episode

“내가 그렇게 좋아~”

 

우연히 알게 된 인간의 습관. 그 인간이 외출하고 돌아왔을 때, 내가 몇 번 깡충거리며 앞발로 그 인간을 만져주면 좋아 죽는다는 거. 내가 그렇게 좋아? 아아~ 아니라니까. 간식 때문에 그런 거 아니라고. 도대체 개를 뭘로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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