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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산책

[합강정공원] 강원도 인제의 정중앙 합강정(合江亭)

by 피터 스토리 2022. 11. 22.

‘합강정’, 내린천과 인북천이 만나는 곳

박인환 시비, 강원도 중앙단, 합강정


한국시집박물관으로 가는 길, 인제군 합강리를 지날 무렵 합강정휴게소에서 잠시 쉽니다. 휴게소 우측으로 합강정공원이 보입니다. 급할 거 없는 나들이, 천천히 공원으로 향합니다.

박인환 시비, 강원도 중앙단, 합강정 안내문이 보입니다. 한 곳에서 여러 가지를 보게 됩니다.

‘군민의 종’입니다. 받침돌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내설악의 터전 하늘 내린 인제는 푸른 물과 깨끗한 공기 속에 천혜의 자연경관이 신비스럽게 조화로운 전국 제일의 청정지역입니다. 예부터 아름다운 비경을 찾아든 묵객과 풍류가들의 시와 노래는 골골마다 흔적이 젖어있고 유구한 문헌의 기록은 물론, 근래에는 사시사철 찾아드는 관광객들로 미래의 무한한 발전을 약속한 땅입니다.

이곳 소양강 상류 인제팔경의 하나인 유서 깊은 합강정공원에 인제에 터를 잡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아 ‘인제군민의 종’을 세우니, 이 종소리는 군민화합과 소통의 마음을 담아 인 제군민의 안녕과 염원 그리고 희망찬 미래의 울림으로 영원히 메아리 칠 것입니다.

인제팔경의 하나인 ‘합강정(合江亭)’입니다.

합강정은 인제에서 가장 일찍 건립된 누각형 정자 건물로 이세억 현감 재직 시인 숙종 2년(1676년)에 건립되었습니다. ‘합강정’이라는 정자 이름은 정자 앞을 흐르는 강 이름에서 붙여졌습니다. 합강리 앞에 흐르는 강물은 동쪽의 오대산, 방태산 등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내린천과 설악산과 서화에서 발원하는 인북천이 홍진포(옛 합강 나루터)의 용소에서 합류되어 흐르기 때문에 합강이라고 불렸으며, 합강변을 중심으로 형성된 뛰어난 지세와 경관을 내려다볼 수 있는 능선에 정자를 건립하면서 합강정으로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1676년에 인제읍민을 동원하여 지어진 합강정은 화재 등에 의하여 소실된 것으로 보이며, 김선재 현감 재임 시인 영조 32년(1756)에 다시 중수되었습니다. 1760년에 간행된 여지도서(與地圖畫)에는 ‘합강정은 십자각 형태의 누각으로 건립되었는데, 다섯 칸이다’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8세기 전후에 건립된 합강정은 5칸 규모의 정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1865년에 다시 6칸 건물로 중수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근래에 이르러 합강정은 한국전쟁에서 폭격에 의해 소실되었으나, 1971년 10월 합강나루터 능선 위에 6칸 규모의 콘크리트 2층 누각으로 신축되어 옛 정자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1983년부터는 합강문화제의 제례가 봉행되는 신성한 장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되어 인제군을 대표하는 전통 건조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의 합강정은 1996년 국도확장공사에 의하여 철거된 것을 1998년 6월 2일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2층 누각으로 복원한 것입니다.


합강정 뒤로 돌아가면 포토존과 번지점프를 할 수 있는 곳이 나옵니다.

합강정 뒤 강가 방향에는 미륵부처를 모신 곳이 나옵니다. 이에 대한 전설이 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300여 년 전 설악산과 점봉산에서 나무를 해서 뗏목을 타고 목재를 운반하던 박명천이라는 나무꾼이 합강정 인근에서 쉬고 있는데, 꿈에 백발노인이 나와서 “내가 이 강에 묻혀 있어서 답답하니 건져 달라”라는 말을 하고 홀연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꿈에서 깬 나무꾼은 잠수에 능한 김성천에게 부탁해서 강으로 들어가 봤는데, 유난히 성스러운 빛을 띠는 석주가 있어서 보았더니 미륵불이었다고 합니다. 미륵불을 건져서 합강정 인근 언덕에 세워두었는데, 국도공사로 현재의 합강정 뒤로 옮겼다고 합니다.

합강정에 오르면 내린천과 인북천이 만나 합강이 되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합강정에서 내려다본 ‘강원도 중앙단’입니다. 말 그대로 강원도의 중앙에 있는 것입니다.

‘중앙단’은 조선시대 각 도의 중앙에서 전염병이나 가뭄을 막아내고자 억울하게 죽거나 제사를 받지 못하는 신을 모시고 별여제를 지냈던 제단입니다. 조선시대 여제는 국가에서 자연신에게 지내는 제사 중 소사에 해당하는 제사로 정종 2년 1400에 지방의 주현까지 행해졌습니다. 임금이 봉행하는 여제단은 궁성 밖 북교, 동교, 서교에 설치되었고, 주현의 고을에서는 주로 관아 북쪽의 민가에서 멀리 떨어진 구릉지에 제단이 만들어졌습니다. 제사는 매년 청명, 7월 15일, 10월 1일 3회에 걸쳐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냈고, 역병이나 가뭄이 심한 지역에서는 시기와 장소를 별도로 정하여 별여제를 시행하였습니다. 여제가 국가와 지방에서 정례적으로 행해진 것은 농경중심의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가뭄이나 전염병 등 재난의 원인이 제사를 받지 못하거나 억울하게 죽어 원한이 맺힌 신들 때문이라 생각하여, 그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 위로함으로 재난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강원도지(1941년)와 관동읍지의 기록에 의하면, 중앙단은 강원도의 중앙인 합강정 뒤쪽에 설치되어 1843년 전후까지 동서의 수령들이 모여 강원도의 별여제를 지냈던 것으로 보이나 1901년 경에는 소실되어 터만 남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2001년 7월 24일에 복원된 현재의 중앙단은 가로 세로 6.51m, 높이 0.775m의 정방형 사각평면 형태로 화강석으로 만들어졌으며, 국조오례의와 18세기 건축표준척도인 영조척을 적용하여 문화재 수리·복원 준칙에 의하여 복원되었습니다.

중앙단에서 바라본 합강정의 모습입니다. 이제 박인환 시비로 향합니다.

박인환 시비(朴寅煥 詩碑)입니다.

인제가 낳은 시인 박인환(1926~1956, 인제읍 상동리 159번지 출생)은 1950년대를 극명하게 살다 간 시인입니다. 비록 31세의 짧은 생을 살았지만 온몸으로 불태운 그의 시혼은 우리들 가슴속에 살아 숨 쉽니다. 시인 박인환은 바로 인제인의 영원한 반려자요, 자랑이기에 군민의 정성이 담긴 성금으로 시비를 세워 오래도록 기리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1988년 8월에 인제읍 군축령 아미산공원에 건립하였으나, 국도 확장 공사로 인하여 1998년에 현재의 장소로 이전하였습니다. 시비는 기단부와 머릿돌은 시인의 시 ‘일곱 개의 층계’와 ‘구름’을 형상화하였으며, 몸체는 설악산·대암산·방태산을 상징하도록 하였고, ‘세월이 가면’은 시인의 자필을 확대하여 새긴 것입니다.

※ 박인환 시비는 중앙단 좌측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합강정공원을 모두 둘러봤습니다. 이제 한국시집박물관으로 향합니다.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를 함께하시죠.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가수 박인희의 노래 ‘목마와 숙녀’를 들으시면 감회가 새로울 것입니다. 오늘도 좋은 날, 좋은 시간입니다.

합강정공원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합강리 산29-3


사족

한국시집박물관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렀다가 박인환 시비와 강원도 중앙단, 합강정을 한곳에서 보게 됩니다. 합강정공원에 이 모든 게 있습니다. 이른바 일석삼조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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