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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국립춘천박물관 개관 20주년 특별전] 미물지생(微物之生), 옛 풀벌레 그림 속 세상

by 피터 스토리 2022. 12. 14.

 


천천히 걸어야 볼 수 있는 가장 작은 세상

 2022년 10월 25일부터 2023년 1월 25일까지

‘미물지생(微物之生), 옛 풀벌레 그림 속 세상’ 


 

 

국립춘천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는 국립춘천박물관 개관 20주년 특별전으로 2022년 10월 25일부터 2023년 1월 25일까지 ‘미물지생(微物之生), 옛 풀벌레 그림 속 세상’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가장 작은 세상

옛사람들은 벌레를 세상 만물 중에서 제일 작은 미물로 여기고 벌레가 사는 세상이 가장 작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벌레가 사는 작은 세상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그림으로 그렸으며, 그 그림에 교훈이나 소망을 담기도 했습니다.

 

풀벌레를 그린 10폭 병풍(草蟲圖十幅屛風)

신사임당(1504~1551)/조선/종이에 채색/국립중앙박물관

신사임당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작품입니다. 신사임당은 율곡 이이(1536~1584)의 어머니로, 16세기 이후 송시열(607~1689)을 중심으로 사대부들에게 존경의 대상이었으며, 숙종재위 신사임당의 초충도 모본을 제작하여 궁궐에서 감상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자수를 위한 수본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풀벌레 그림은 자연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벌레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화가들은 각양각색의 벌레가 본능에 따라 ‘날고’, ‘울고’, ‘기고’, ‘뛰는’ 다채로운 모습들을 관찰하여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풀벌레를 그리려면 그 날고 번뜩이고 울고 뛰는 상태를 살려야 한다

(畫草蟲 須要得其飛躍鳴蠉之狀)... 개자원화전 3집, ‘화초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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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고, 울다

날개가 있는 벌레는 나비, 잠자리, 벌 등 다양한데, 옛사람들은 그중에서도 나비를 가장 즐겨 그렸습니다. 나비는 장수와 장자의 호접몽(胡婕夢) 고사 등을 표현하였습니다. 매미는 소리를 내어 우는 대표적인 벌레입니다. 옛사람들은 매미를 군자의 덕을 지닌 벌레라 하여 무척 좋아했습니다.

 

무리 지어 나는 나비(群蝶圖)

정진철(1908~1967)/20세기 초/비단에 채색/선문대학교박물관

 

모든 풀벌레는 머리를 먼저 그리지만, 나비만은 날개를 먼저 그린다. 날개는 나비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그 전체와 풍채가 여기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凡物先畫首 畫蝶翅為先 翅得蝶之要 全體神采兼)... 개자원화전 3집, ‘화협접결’

 

나비를 그린 10폭 병풍(胡蝶圖十幅屏風)

이경승(1862~1927)/20세기 초/비단에 채색/아모레퍼시픽미술관

 

나비로 표현한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

옛사람들은 나비를 뜻하는 한자 접(蝶)과 여든 살을 뜻하는 질(耋)의 중국어 발음이 같다는 점을 이용하여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비로 그렸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고양이를 함께 그려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더 간절히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 고양이를 뜻하는 묘(猫와) 늙은이를 뜻하는 모(耋)는 중국에서 같은 발음입니다. 

 

꿈속을 나는 나비 “나는 나인가. 나비인가”

옛사람들은 그림 속의 나비를 보고 장자가 꿈속에서 변한 나비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나(장자)는 꿈에서 나비가 되었다. 나비는 스스로 유쾌하고 즐거운 마음에 훨훨 날아다니며, 스스로 나임을 알지 못했다. 문득 꿈에서 깨어보니, 내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꿈을 꾸어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을 꾸어 내가 된 것인지...

- 장자, ‘제물론’ 내편

 

부채에 그린 풀벌레

신명연(1808~1866)/조선/종이에 채색/국립중앙박물관

 

부채에 그린 나비(扇面蛺蝶圖)

김홍도(金弘道 1745~?)/조선 1782/종이에 채색/국립중앙박물관

1782년에 김홍도가 부채에 그린 그림입니다. 흰 찔레가 화면 오른편 하단에 그려졌고, 위쪽으로 세밀하고 생동감 있는 나비 세 마리가 날고 있습니다. 화제에는 이 그림을 본 감상평이 남아 있는데, 그림 속 나비를 장자의 꿈속을 날던 나비로 빗대고, 나비의 사실적 표현을 나비 가루가 손에 묻을 것 같다는 말로 경탄하였습니다

 

 

계수나무에 매달려 우는 매미(草蟲圖)

심사정(沈師正, 1707~1769)/조선/종이에 채색/국립중앙박물관

 

괴석과 벌레(草蟲圖)

남계우(南啓宇, 1811~1890)/조선/비단에 채색/국립중앙박물관

남계우는 대상의 관찰을 통한 사실적 재현을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푸른색 괴석을 중심으로 풀매미, 나방 등을 표현한 이 작품은 괴석 맨 위에 풀매미 세 마리를 그렸는데, 머리·등과 배·꼬리와 날개 부분을 세밀하게 묘사하였습니다. 또한, 괴석 가운데는 알락굴벌레나방 또는 누에나방으로 보이는 벌레 두 마리가 교미하는 자세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는 남계우가 쓴 시 중에서 고치 속에서 나방이 나오는 모습을 관찰한 내용과도 연결됩니다.

 

군자의 다섯 가지 덕목을 갖춘 매미

선비들은 매미가 군자의 다섯 가지 덕목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여 주변의 물건에 매미를 그려 넣어 본받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매미를 그릴 때는 매미가 어떻게 옆구리를 움직여 우는지를 자세히 관찰해 그렸습니다.

 

(매미는) 머리에 갓끈 무늬가 있으니 문인의 기상을 갖춘 것이요, 천지의 기운을 품고 이슬을 마시니 청정함을 갖춘 것이요, 곡식을 먹지 않으니 정렴함을 갖춘 것이며, 거처함에 둥지를 만들지 아니하니 검소함을 갖춘 것이요, 때에 응하며 자신의 할 도리를 지키어 울어대니 신의를 갖춘 것이다.

- 육운 ‘한선부’ 서문

 

풀벌레를 그린 10폭 병풍(草蟲圖十幅屏風)

전 신사임당(傳申師任堂, 1504~1551)/조선/종이에 채색/강릉 오죽헌시립박물관

신사임당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작품으로, 강원도 강릉에 있는 율곡의 위패를 모신 송담서원에서 보관했다고 알려져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신사임당의 초충도를 따라 그린 모사본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풀벌레 무늬가 있는 청화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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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고, 기다

벌레 중에는 날지 않고 주로 기거나 뛰어다니는 벌레도 있습니다. 풀 속에서 기거나 뛰어다니는 이런 종류의 벌레는 날개가 있어도 멀리 날지 못합니다. 옛사람들은 이들에게서 인간 세상의 다양한 이치를 발견하고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사마귀와 나비(草蟲圖)

죽향/조선/비단에 채색/국립중앙박물관

등을 그리고 주변에 사마귀와 나비를 그렸습니다. 옅은 채색으로 나뭇잎의 색깔을 달리 표현하고, 등에 호분을 찍어 번짐을 이용하였습니다.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필선이지만, 사마귀와 나비의 표현이 도안을 참고한 듯 다소 경직되었습니다.

 

앞발을 들고 있는 사마귀

화가들은 사마귀가 수레바퀴에 맞서 앞발을 들고 있는 모습을 즐겨 그렸습니다.

사마귀라는 벌레 이야기 아시는지요.

화가 나 앞발을 들고 달려오는 수레에 맞섭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지요.

이것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것입니다.

- 장자 내편, ‘인간세’

 

사마귀는 작은 벌레이긴 하지만, 이를 그리려면 위엄 있게 그려야 한다. 사마귀가 무엇을 움켜 쥔 모습을 그릴 때는 얼핏 보기엔 호랑이 같아서, 두 눈동자의 기세는 삼킬 듯하고 그 모양은 매우 탐욕스럽다.

- ‘개자원화전’ 3집, ‘화당랑결’

 

국화와 방아깨비(草蟲圖)

김익주/조선/비단에 채색/국립진주박물관

 

사마귀를 쫓는 개구리(花鳥蟲類圖)

작자 모름/조선/종이에 채색/국립중앙박물관

사마귀를 쫓고 있는 개구리를 묘사한 장면으로, 사마귀는 날개를 펼쳐 도망가고 있습니다. 종이에 수묵만을 이용한 간결한 필선으로 그렸으나, 옥잠화의 잎맥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그렸습니다. 풀벌레의 생태를 기반으로 한 먹이사슬 등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국화와 방아깨비

이방운(1761~1823)/조선/종이에 채색/선문대학교박물관

 

연꽃과 청개구리(花蝦蟆圖)

심사정(沈師正, 1707~1769)/조선/종이에 채색/개인 소장

 

순무를 먹는 쥐(鼠囓紅菁)

심사정(1707~1769)/조선/종이에 채색/개인 소장

배추와 순무, 순무를 갉아 먹는 쥐 한 마리를 그렸습니다. 배춧잎은 파초처럼 길고 끝이 펼쳐진 모습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세 개의 순무가 땅 위로 올라온 높이를 달리해 율동감 있게 연결되고 있습니다.

 

색비름, 나비와 메뚜기(花蝶草蟲圖)

심사정(1707~1769)/조선/종이에 채색/개인 소장

 

풀 속에서 벌레와 함께 사는 작은 동물들

풀 속은 벌레뿐만 아니라 개구리, 도마뱀, 고슴도치 등 작은 동물들이 함께 살아가는 터전입니다. 옛사람들은 개구리, 도마뱀, 고슴도치 등도 작은 세상을 살아가는 미물로 생각하여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오이를 등에 지고 가는 고슴도치(刺蝟負瓜)

심사정(1707~1769)/조선/종이에 채색/개인 소장

고슴도치가 오이를 등에 지고 가는 장면을 묘사하였습니다. 화면 중심에는 오이를 등에 진 고슴도치를 두고, 화면 오른편에 오이덩굴과 맨드라미를 배치하였는데, 한 줄기 오이덩굴이 율동감있게 위로 뻗어 올라가도록 화면을 구성했습니다.

 


3

풀벌레를 관찰하는 시선과 화법

옛 화가들은 사생(寫生)을 통해 풀벌레의 모양과 색깔 등을 자세히 관찰하여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그리고 화보를 보면서 풀벌레의 생김새, 동작을 묘사하는 방법, 구도 등을 익히고 연습했습니다.

 

개자원화보(芥子園畫譜)

중국 청/종이에 판화/명주사 고판화박물관

 

 

윤공은 일찍이 호랑나비와 잠자리 등을 잡아다가 그 수염과 분가루 같은 미세한 것까지도 관찰하여 그 형태를 묘사해서 기어이 실물에 핍진하도록 하고야 말았으니, 이러한 점으로 보아 그가 정밀하고 깊이 있게 노력한 것을 알 수 있다.

尹公嘗取蛺蝶蜻蛉之屬 細視其鬚毛粉澤之微 而描其形 期於肯而後已 卽此而其 精深刻苦可知也... 정약용, ‘여유당전서’ 권1

 

새우(群蝦圖)

중국 20세기/종이에 먹/국립중앙박물관

 

개자원화보

중국 청/종이에 판화/명주사 고판화박물관

 

풀벌레무늬 접시(白磁草蟲文楪匙)

일본 에도/국립중앙박물관

 

 

국화와 메뚜기, 사마귀(草蟲圖)

김익주/조선/비단에 채색/국립진주박물관

 

개자원화보

중국 청/종이에 판화/명주사 고판화박물관

 

난과 나비

 

풀벌레 그림

 

여치와 귀뚜라미가 우는 농가

 

초본화시보

 

 

천천히 걸어야 볼 수 있는 세상

옛사람들은 작은 벌레까지도 배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옛사람들이 보인 관심처럼 우리도 풀벌레에게 관심을 기울여 보면 어떨까요? 우리가 길을 걸으며 천천히 주변을 살펴볼 때,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세상인 풀벌레가 사는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국립춘천박물관

강원 춘천시 우석로 70

지번; 석사동 95-3

운영시간; 화~일 09:00~18:00

033-260-1500

 

 

사족

언제나 새로움을 느끼는 곳, 춘천박물관

지난번엔 오백나한과 안녕 모란을, 이번엔 옛 그림 속 가장 작은 세상을 만납니다. 그렇습니다. ‘미물지생(微物之生), 옛 풀벌레 그림 속 세상’입니다. 바쁜 세상, 살다보면 소홀하기 쉬운 것이 너무 많습니다. 모처럼 시간을 내어 그 세상을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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