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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산책

[동묘(東廟)] 동관왕묘(東關王廟)에서 관우를 만나다

by 피터 스토리 2022. 11. 14.

 


동묘시장 한복판에는 ‘동묘’가 있습니다

중국 촉나라 장수 관우를 모신 곳


 

동관왕묘(東關王廟) 또는 동묘(東廟)는 중국 촉나라의 장수 관우, 즉 관왕을 모신 관왕묘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묘앞역 근처에 있습니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42호 지정) 줄여서 ‘동묘’라고 부른답니다.

 

동묘 주변은 동묘시장이라 하여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습니다.

 

동묘는 어막대 정비공사 중에 있으며, 연말쯤 공사가 끝날 예정입니다.

 

그렇다면 동묘는 어떻게 세워진 것일까요.

임진왜란 때 관우의 혼이 때때로 나타나 조선과 명나라의 군을 도왔다 하여 선조 32년(1599)에 명나라 신종 황제의 명에 따라 건립하여 2년 후에 준공하였습니다. 명나라 신종이 친필 현판과 함께 건축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는데, 공사를 짓는 중에 신하와 유생들 그리고 언론삼사는 백성들이 고생한다며 관왕묘를 짓는 것을 반대합니다.

- 참고; 위키백과

 

논란이 많았던 건축은 무사히 끝났지만 선조와 신하들은 동관왕묘를 홀대했습니다. 선조의 왕위를 이은 아들 광해군은 동관왕묘의 수리를 명하고 제례를 지내게 했습니다. 이후 동관왕묘에 관한 기록은 실록에 나오지 않다가 숙종 때에 가서야 나옵니다. 숙종은 관우의 충절로 시도 지었고 동관왕묘에 참배도 했습니다. 숙종 17년(1691) 2월 17일에는 무안왕묘(동관왕묘)를 보수하라고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영조도 동관왕묘에 자주 참배했고, 영조 15년(1739) 6월 9일에 동관왕묘를 중수합니다. 정조도 관왕묘에 많은 관심을 가졌는데, 정조는 동관왕묘에 비석을 세우게 했습니다. 대한제국 때는 고종이 관왕묘를 적극 지원하고 관왕을 관제(關帝)로 높여 관제묘라고도 하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에는 수많은 관왕묘들이 훼손되거나 철거됩니다. 원래 동대문 밖에 동관묘, 남대문 밖 도동에 남관묘, 명륜동에 북관묘, 서대문 밖 천연동에 서관묘, 종로 네거리 보신각 뒤에 중관묘의 다섯 곳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동관묘만 그 위치에 그대로 남아있고 남관묘는 일제가 목멱산(남산)에 조선신궁을 세우면서 헐어버린 것을 지금의 사당동으로 옮겨지어 지금에 이르고, 다른 세 곳은 사라집니다.

 

2011년 10월 동묘의 금동 관우상 뒤편 일월오악도 뒤에서 운룡도가 발견되었습니다. 발견된 운룡도는 조사를 받고 원래대로 일월오악도로 가려졌습니다.

 

고종이 추증한 관우의 시호인 ‘현령소덕의열무안관제(顯靈昭德義烈武安關帝)’가 현판에 적혀 있습니다. 동관왕묘는 보물로 지정되었는데, 전쟁 이후에 명나라와 조선에서 우호를 다지면서 굉장히 공을 들여서 지어졌기 때문에 상당히 수준 높은 문화재라 합니다. 동관묘는 특히 성균관의 문묘와 나란히 무묘(武廟)라 불릴 만큼 격이 높았는데, 춘추로 치러지는 대제(大祭) 때에는 임금이 손수 무복(武服)을 입고 참례를 할 정도였으며, 지방에도 성주, 안동, 남원, 강진의 네 곳에 조선 조정이 공식적으로 세운 관왕묘가 있었습니다.

 

들어올 때 본 금잡인’ 비입니다. 즉 잡인은 출입을 금한다는 것이죠. 우측의 하마비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여기서부터는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동묘시장에 가는 길이라면 잠시 시간을 내어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넓은 녹지가 있어 도심 속에서 탁 트인 시야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동묘공원

서울특별시 종로구 숭인동 222

02-731-0536

 

 

사족

돌 하나, 나무 하나 모두 백성들의 고혈

다음은 사헌부가 올린 상소 중 일부입니다. “기해년(1599) 8월에 시작하여 지금 20개월이 되었는데, 한 달 동안의 역군(役軍)이 2백여 명에 달합니다. 중국군들이 철수한 후에도 백성들이 쉬지 못하니, 소동과 원망이 이는 것은 모두 이 때문입니다. 일부러 지연시켜 세월만 끌고 있으므로 공사가 끝날 기일이 전혀 없는 채 사람들의 말만 많으니, 뜻있는 사람들이 분통해 한 지 오래입니다. 이처럼 백성들의 힘이 탕갈 된 때에 군사 하나를 내고 돌 하나, 나무 하나를 운반하는 것이 모두 백성들의 고혈에서 나오는 것인데, 관의 일을 맡은 사람들이 감히 사사로운 일에만 힘을 쓰고 공(公)은 돌보지 않음으로써 나라를 속이고 백성을 해치는 것이 이 지경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정치, 남의 일이 아닙니다. 자녀들의 미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빈티지 천국, 동묘 벼룩시장

동묘 벼룩시장은 1980년대 말 생겨났으며 명성에 비하면 그 규모가 많이 위축됐지만 지금도 온갖 희귀한 물건들이 모여드는 명소입니다. 의류, 신발, 지갑부터 시계나 전자제품, 심지어 고서, 영화 포스터에 이르기까지 온갖 제품들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동묘 벼룩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은 역시 중고 의류입니다 노점상들이 매대를 펼치는 휴일 오후가 쇼핑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대라고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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