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는 성냥불로 붙여야 제 맛
한때 명동 고전 음악실 필하모닉을 다닌 적이 있습니다. 군 입대 전이니 겉멋이 들었을 때죠. 암실처럼 어두운 음악실 의자에 깊숙이 누워 앉아 지그시 눈을 감고 클래식에 빠져듭니다. LP판을 교체할 때쯤 잠시 나와 어두운 바의 한 귀퉁이에 앉아 무심히 음악잡지를 뒤적입니다. 그때, 바에 앉은 여성이 담배를 꺼내 무는 모습이 보입니다. 전반적으로 어두운 홀은 바를 중심으로 조명이 비칩니다. 그곳에 사람이 앉으면 자연스럽게 조명을 받고 배경은 온통 어둠입니다. 그러니 누가 앉더라도 멋진 실루엣으로 우아하게 보일 수밖에요.
검은색 원피스 차림의 날씬한 여성은 버건디 컬러의 입술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입니다. 당시에도 최고급에 속하는 금장 듀퐁 라이터입니다. 잠시 후 허공을 향해 담배연기가 뿜어져 나옵니다. 어둠을 배경으로 하얀 담배연기가 춤추듯 길게 뻗어나갑니다. 아아, 그 멋진 모습. 마치 영화 카사블랑카의 한 장면 같습니다. 갓 성인이 된, 제 눈에 비친 그 모습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아버님은 주로 파이프 담배를 태우셨는데, 단 한 번도 멋지게 느낀 적은 없었습니다. 담배를 태우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상대가 여자였기 때문일까요. 아무튼 담배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군 입대 후 담배를 배웠으니 흡연은 다소 늦게 시작한 편입니다. 훈련의 강도가 심할수록 담배에 의지했습니다. 지급받은 화랑 담배는 필터가 없었고, 상병쯤 되었을 때는 필터가 있었으나 시판 담배의 필터와는 다른 거친 것이라 모양만 필터라고 볼 정도였습니다. 당시에는 일주일에 서너 갑 지급받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담배 길이는 손안에 감춰질 정도로 아주 짧았습니다. 담배 맛은 워낙 거칠어서 피울 때마다 ‘다음엔 절대 피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그게 쉽지 않았습니다. PX에서 좋은 담배를 사서 피우기에는 몇 천 원밖에 안 되는 월급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고요.
당시 지포 라이터는 저의 애장품이었습니다. 라이터 기름은 수송부에서 휘발유를 얻어서 넣었는데 불이 잘 붙었습니다. ‘사제담배’는 휴가를 가거나 혹은 다녀온 동료에게 얻어 피웠는데, 그 달콤한 담배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당시에는 ‘선’과 ‘거북선’이 좋은 담배에 속했는데, 특히 거북선 한 보루를 가지고 있으면 든든했습니다. 이후 ‘타임’을 줄곧 피우다가 나중에는 ‘심플 에이스’로 변경, 지금까지 수십 년 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흡연량은 하루 두 값 정도였는데, 지금은 한 값이 안 될 정도니 많이 줄인 셈이죠.
담뱃불은 지포 라이터를 주로 사용하다가 나중에는 성냥으로 바꿨습니다. 성냥으로 담뱃불을 붙이는 맛은 남달랐습니다. 성냥갑 마찰면에서 시작되는 특유의 느낌은 묘한 중독성과 낭만이 있다고 할까요. 성냥은 그 종류가 많은데, 오래전에는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 성냥갑입니다. 시골집 아궁이에는 붉은색의 원통형이나 육각형 통에 있었는데, 아무래도 담배에 맞는 것은 작은 종이상자에 담긴 것이죠. 성냥을 꺼내 상자 옆면에 마찰시켜 불을 붙이면 고유의 화약연기가 일고, 잠시 기다리면 성냥개비의 나무에 불이 붙으며 진정한 성냥불이 됩니다. 아직도 성냥으로만 불을 붙이는 애견가들이 있으니 성냥불은 나름의 매력이 있는 것이죠.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좀 더 멋지게 보이고 싶어 듀퐁이나 지포 라이터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역시 담배 맛을 제대로 느끼는 것은 성냥이었습니다. ‘성냥’, 그 아련한 추억들, 낭만... 라이터나 성냥불은 같은 것 같지만, 역시 담배는 성냥불로 붙였을 때 가장 좋은 맛이 납니다. 밥을 짓는데 가마솥과 전기밥솥의 차이처럼, 성냥불은 가마솥 같은 기분이 듭니다. 요즘은 흡연자가 외면받는 세상이지만 저는 아직도 구수한 담배향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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