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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한국시집박물관] 한국의 시(詩) 세계를 한 곳에서 본다

by 피터 스토리 2022. 11. 19.

우리 시(詩)의 역사를 시대별로 살펴볼 수 있는 곳


 

강원도 인제, 강원도에서 군 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혹독한 겨울 추위가 새삼 떠오를 것입니다. 초겨울로 성큼 다가선 쌀쌀한 오후 인제 ‘한국시집박물관’을 찾았습니다.

 

숲길을 따라 시인을 만난다

한국시집박물관은 야외 숲에 ‘시인의 나무’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나무’는 근·현대 시인 한 분 한 분을 기념하는 시비를 소나무 숲과 어우러지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지난해 ‘여초서예관’을 찾았을 때 잠시 들린 적은 있지만 오늘처럼 마음먹고 관람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평일 오후의 한가로운 박물관, 이 시간에 이곳까지 관람객들이 찾아온다는 게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롯이 편안하고 느긋하게 박물관을 둘러봅니다.

 

멋진 현대식 건축물이 먼저 반깁니다. 

 

입구를 둘러보고 2층 상설 전시장으로 들어갑니다.

 

 

한국 현대시의 자취

한국의 현대시는 개화 계몽시대에 일반화되기 시작한 국문 글쓰기를 기반으로 성립됩니다. 한국의 현대시는 근본적으로 한국 민족의 정서를 한국어라는 민족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정서를 기반으로 시적 형식의 균형과 조화를 찾아내면서 새로운 시 정신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시는 그 역사적 전개 과정을 몇 가지 단계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현대시가 자유시의 형태를 정착시키면서 여러 가지 시적 양식을 실험한 시기입니다. 개화계몽시대부터 일제강점기 전반기까지 한국 현대시는 자유시 형태에서 출발하여 산문시와 장시의 형태를 실험하기도 하고, 형식적 고정성을 유지하는 현대시조의 부흥운동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일제강점기 후반기를 말합니다. 이 시기에 현대시는 서양의 모더니즘 시운동의 영향으로 언어의 감각을 살려내고 지적인 주제를 적극 포괄합니다.

 

세 번째 단계는 한국의 해방 이후 1960년대까지를 들 수 있습니다. 현대시의 영역에서 전통적인 서정시 계열과 역사와 현실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현하는 사회시 계열이 분화되고 새로운 기법과 언어에 대한 적극적인 실험이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네 번째 단계는 1970년대 이후의 산업화 과정과 민주화 시대가 이에 해당합니다. 이 시기의 정치 상황에 대응하여 순수시와 참여시 또는 민중시의 대립이 나타나기도 하였으며, 개인적 서정성을 깊이 천착하기도 하고 초월주의적 시적 인식을 나타내기도 하는 다양한 시적 경향이 자리 잡게 됩니다.

 

한국 현대시는 새로운 시적 형식의 추구, 시적 기법과 언어의 실험, 시 정신의 확대와 그 깊이의 구현 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 현대시가 자기 언어와 시적 형식을 찾는 노력이면서 동시에 시 정신의 새로운 지향과도 통합니다. 한국 현대시는 이러한 노력을 통해 민족분단을 극복하고 우리 민족의 삶의 모든 영역을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시 정신의 확립을 위해 변화와 발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움을 주신 분

개인; 조오현(시조시인), 권영민(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유정염(만해문학박물관장)

기관; 국가기록원, 김달진문학관, 김수영 문학관, 동리·목월 문학관

※ 위 내용은 권영민 ‘한국 현대문학의 이해’에서 참고했습니다.

 

 


1990 한국 근대시의 등장

 

신체시의 등장

1894년 갑오개혁을 전후로 조선은 계몽사상과 개혁을 통한 자율적인 근대성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이 시기는 한국 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문학은 그러한 삶을 흡수하고 반영하였습니다. 이 시기 시가는 개화 계몽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서구의 문물로 인해 변화되어 가는 삶을 노래하였으며, 이는 새로운 시문학의 성립을 초래하였습니다.

 

이 새로운 시가 형태는 창가라고 불리며, 창가는 민족의 자주와 독립 그리고 문명개화의 이상을 노래하는 등 계몽적 요소를 지니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 이 시기에 함께 등장한 신체시는 시적 형태의 고정성에서 벗어나고 있는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등을 가리킵니다.

 

이 작품들은 개화 가사나 창가에서 볼 수 있는 고정적 형식에서 벗어나 시행의 구분이 비교적 자유롭고 전체적인 시적 형식도 어떤 규칙적인 틀에서 벗어났습니다. 이 같은 새로운 형식의 등장은 자유시의 형성 과정을 보여주는 하나의 단계라는 점에서 문학사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1910 한국 근대시의 정착

 

일제강점기와 문학적 대응

전통 시가 양식의 변혁과정에서 나타난 개화 가사와 개화 시조의 뒤를 이어 등장한 창가와 신체시의 등장은 개화·계몽시대 새로운 문학의 성립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문학 성립에 이바지한 작품으로는 이중원의 ‘동심가’와 같은 창가와 최남선의 ‘꽃두고’와 같은 신체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한국의 문학은 그 이전에 추구해 오던 개화·계몽운동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일본은 한국인들의 사회 문화 활동을 규제하기 위해 언론 출판에 대한 검열 정책도 강화하였습니다. 따라서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를 제외하고 여러 사회단체가 발간하던 기관지나 잡지는 모두 폐간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항하여 한국민족의 저항의식이 행동으로 표출된 것은 1919년의 3·1운동이며, 이로 인하여 민족적 자기 인식을 확립할 수 있는 정신 기반이 성립됩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의 지식인들은 3·1운동 이후 창간된 민간 신문과 잡지 등을 통해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비판하고 민족의식을 각성시키기 위한 각종의 계몽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1920 한국의 독자적 자유시

 

현대시 양식과 기법의 확립

한국 현대시의 성립 과정에서 선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김 억, 황석우, 주요한 등은 서구적인 자유시 형태를 수용하면서 독자적인 시정신과 시적 형식을 확립하고자 하는 지속적으로 노력했습니다.

 

3·1운동을 전후한 시기의 시들은 감상주의에 빠져들어 현실 도피적인 경향을 드러내기도 하였으나, 현실적 상황에 대한 시적 인식을 확대함으로써 이를 극복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적인 운율의 발견을 통해 한국 근대시의 시적 형식을 새롭게 발전시킵니다. 특히 주요한의 ‘불놀이’에 나타난 자유시에 대한 지향은 시적 자아의 확립과 개성의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시 형식의 확립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밖에 한국 근대시의 기반을 확립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 시인으로는 김소월, 이상화, 한용운 등을 들 수 있다. 먼저 김소월은 시집 ‘진달래꽃’에서 전통적인 민요의 율격을 재구성하여 서정의 세계를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데에 성공하였으며, 이상화는 시대의 고통과 개인의 고뇌를 극복하고 식민지 현실에 대한 시적 인식을 확대합니다. 한용운은 시집 ‘님의 침묵’에서 역사에 대한 신념을 여성적 어조로 형상화하여 새로운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3·1운동

1910년 일제에 우리의 국권을 빼앗긴 이후 일제로부터 독립을 되찾는 일은 우리 민족 최고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민족의 독립운동이 불타오른 계기가 1919년에 일어났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패전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회의가 파리에서 열렸는데, 이때 미국 대통령 윌슨은 식민지들의 독립을 강조하는 ‘민족 자결주의’가 미국의 입장임을 밝힙니다. 이 소식을 접한 민족 지도자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 우리의 독립을 쟁취하고자 여러 가지로 노력하였습니다.

 

특히, 중국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던 신한 청년단은 김규식을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로 파견하여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고자 했습니다. 또한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던 한국인 유학생들은 도쿄에서 조선청년독립단을 조직하여 한국의 독립을 요구하는 독립선언서와 결의문을 발표합니다. (2.8독립선언, 1919)

 

국내에서는 종교계와 학생들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도쿄에서 유학생들이 만세시위운동을 벌였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민족 지도자들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며, 손병희를 중심으로 33인의 대표를 뽑아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했습니다.

 

서울에서는 33인의 민족 대표들이 3월 1일 정오에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였으며, 학생과 시민들은 같은 시각 탑골공원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만세 시위운동은 이후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 5월 초순까지 계속되어 그 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렸습니다.

 

 


1930 모더니즘 시의 성립

 

암흑기를 극복하고 꽃 피운 모더니티

한국 문학은 1930년대 중반부터 일본의 군국주의가 강화되고 문학에 대한 사상적 탄압이 지속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였습니다. 일본은 한국인들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사상 탄압을 더욱 강화하면서 1940년부터는 일상에서조차 한국어를 사용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의 문학은 자기 언어를 상실한 암흑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강화되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한국의 시인들은 시적 대상에 대한 언어적 감각의 혁신을 통해 모더니즘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특히 정지용, 김영랑, 김기림 등은 새로운 언어적 감각을 바탕으로 하여 특이한 이미지를 구성하고 있는 시들을 많이 발표했습니다. 그중 김영랑은 시의 리듬을 민요적인 가락으로부터 개성적인 율격으로 바꿔놓았습니다.

 

1930년대 후반의 시에서 주목되는 경향의 하나는 이육사와 윤동주의 시에서 드러나는 시적 저항과 비극성입니다. 먼저 이육사의 시에서 널리 확인할 수 있는 자기 인식과 정신적 초연성은 그가 보여준 현실에서의 실천적 행동과는 대조적인 일면도 있습니다. 그의 시는 절제와 균형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일상적인 현실 체험의 공간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이육사와는 달리 윤동주는 역사와 현실에 대한 부끄러움의 인식을 시적으로 형상화하였습니다. 그가 보여주고 있는 자기 성찰은 자신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뒤돌아봄으로써 현실의 문제에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1940 해방공간의 민족시

 

해방과 함께 등장한 정치 시, 서정시의 형태 파괴

식민통치로부터의 해방이 이루어지자 정치적인 이념을 주장하기 위한 이른바 정치 시가 등장하여 서정 양식으로서의 시 형태를 상당 부분 파괴하였습니다. 정치적 현실의 이데올로기를 자신의 시적 이념으로 끌어들이면서 자기 변신을 시도한 시들 가운데, 김기림의 ‘새노래’는 시의 이념과 정치적 지향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오장환의 ‘병든 서울’, ‘나 사는 곳’은 현실 지향적인 시적 태도를 분명하게 드러내었습니다.

 

민족진영의 시인들은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의 공동 시집 ‘청록집’, 김상옥의 ‘초적’, 유치환의 ‘생명의 서’, 서정주의 ‘귀촉도’, 박두진의 ‘해’ 등을 내놓았습니다. 이러한 시적 업적은 해방 이후 시의 흐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청록집’의 시들은 자연에 대한 시적 발견이라는 명제로 그 의미가 규정된 바 있고, 해방 이후 서정시의 맥락을 이어가는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되었습니다.

 

박목월의 향토성이나 박두진의 이데아 지향, 그리고 조지훈의 고전적 정신 등은 각 시인의 시적 개성으로 더욱 확대되고, 심화되었습니다. 서정주의 ‘귀촉도’는 사변적인 것보다는 서정성이 균형을 찾고 있으며, 감각적인 것보다는 전통적인 정서를 폭넓게 깔고 있습니다.

 

 


1950 전후 시의 정신적 변화

 

전쟁 후 서정성과 실험적 경향이 강한 시 발달

1950년의 6·25 전쟁은 한국을 남과 북으로 분단시켰고, 한국 사회가 전쟁의 혼란으로부터 점차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입니다. 이때부터 전쟁을 불러일으켰던 이념과 체제에 대한 거부와 반항이 싹텄고, 새로운 삶의 지표와 가치의 정립을 위한 몸부림도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 시문학의 변화 중 하나는 전통적인 서정시가 확대되었다는 점입니다. 특히, 서정주의 시 세계에는 시집 ‘귀촉도’ 이후 토착적인 정서를 지향하는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토착적인 언어의 시적 세련을 가능하게 하고 있는 점, 시의 리듬이 질서가 내재된 율조로부터 자연스럽게 조성되고 있는 점 등은 하나의 문학적 성과로 주목되는 점들입니다.

 

본격적인 전후 시의 경향은 50년대의 새로운 시인들에 의해 형성되었습니다. ‘전통파’라고 불렸던 박재삼, 이동주, 박용래와 같은 새로운 시인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개인의 정서와 감각을 중시하면서 전통적인 자연의 세계를 폭넓게 시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등장한 김경린, 조 향, 김규동, 이봉래 등은 전통파의 시적 경향을 거부하며 착잡한 현실과 혼란된 상황, 끝없는 물질적 요구를 극복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의 방법을 모색하였습니다. 이들은 흔히 ‘실험’ 또는 ‘현실파’로 분류되며 이들의 시에서 가장 특이하게 주목받는 요건은 언어적 기법에 대한 관심과 시적 소재의 확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언어는 현실적이고, 이들이 다루고 있는 소재는 도시 문명의 어둠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특징은 폐쇄된 서정의 세계를 현실적인 차원으로 확장해 놓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1960 순수시와 참여시

 

4.19 혁명과 함께 등장한 현실 참여시

4.19 혁명과 함께 문학에 대한 인식이 크게 전환되었는데, 이는 정치 사회적 체제의 변화에 따라 현실 인식의 태도가 함께 변화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시기에는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삶의 터전을 복구하고 그 피해의식으로부터 벗어나면서 현실에 대한 관심이 적극화되어 나타났는데 이로 인해 문학의 순수성에 대한 관념이 무너지고, 생명력과 의지와 감동을 지닌 현실 지향적 문학이 요구되었습니다.

 

특히 시단 일부에서는 전후 시가 보여준 정서적 폐쇄성을 거부하면서 이른바 현실 참여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합니다. 이들이 내세운 현실 참여는 문학을 통해 진실한 삶의 가치를 구현해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의 현실 참여론을 주도한 것은 시인 김수영과 신동엽입니다. 김수영은 4.19 혁명을 통해 느낀 자유의 참된 의미를 되살려 나아갈 것을 주장합니다. 그의 시에서 드러나는 야유와 욕설과 악담은 혁명의 좌절을 초래한 소시민들의 소극성을 겨냥한 풍자의 의미를 드러내었습니다.

 

그리고 신동엽은 전통적인 서정성과 역사의식의 결합을 시도하였습니다. 신동엽은 시집 ‘아사녀’를 통해 민족의 전통적인 삶의 양식이 역사의 격변으로 붕괴되고 있는 과정을 추적하였습니다. 그는 역사와 현실의 허구성을 폭로하면서 민중적 이념을 내세웠고, 이러한 그의 시적 신념을 장편시 ‘금강’을 통해 치열한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으로 확대시켜 놓았습니다.

 

 


1970 삶의 현실과 시적 변용

 

산업화 시대의 현대시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가 폐쇄된 정치문화와 급격한 산업화로 인하여 혼돈을 거듭하고 있는 동안, 훼손되어가는 인간의 삶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새로운 시도가 시문학에서 싹트기 시작합니다.

 

시의 서정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현실적인 삶을 담고자 하는 이 움직임은 시의 현실적 성격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확대함으로써 정서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특히, 이 시대의 문학적 경향 가운데 주목되는 것이 민중시 운동입니다. 민중시 운동에서는 문학의 현실 참여에 대한 관심을 확대시키면서 부정의 정치 현실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표출하기도 하였고, 소외된 민중의 삶의 모습을 시를 통해 그려내기도 했습니다.

 

민중시에는 시인의 현실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과격한 언어로 묶여서, 때로는 지나치게 이념적인 색채를 드러내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또한, 민중시 운동은 이시영의 ‘만월’, ‘바람 속으로’, 정희성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 김명수의 ‘하급반 교과서’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들은 민중의 삶의 현실을 자신들의 시적 정서의 기반으로 삼고 민중 의식의 시적 형상화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이들의 민중 지향적 태도는 냉철한 현실비판을 수반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러한 비판적 자세 자체가 민중시의 정서적 기반처럼 고정되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김용택의 ‘섬진강’도 이 시기의 민중시의 경향을 잘 보여주는 시집입니다.

 

이상으로 한국시집박물관의 시대별 시의 변천사를 살펴봤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다른 곳을 봅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애송시가 눈길을 끕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애송시

이 결과는 한국 현대시 탄생 100주년 기념 특집 ‘시인만세’를 위해 KBS에서 2008년 10월 3주에 걸쳐 인터넷, 우편엽서, 면접 설문을 통해 1만8천298명, 시인 17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 결과입니다.

 

국민 애송시

1위 김소월 진달래꽃

2위 윤동주 서시

3위 김춘수 꽃

4위 윤동주 별 헤는 밤

5위 천상병 귀천

6위 한용운 님의 침묵

7위 이형기 낙화

8위 정지용 향수

9위 도종환 접시꽃 당신

10위 김소월 초혼

 

시인 애송시

1위 윤동주 서시

2위 김춘수 꽃

3위 한용운 님의 침묵

4위 서정주 국화 옆에서

5위 김소월 진달래꽃

6위 유치환 깃발

7위 박목월 나그네

8위 정지용 향수

9위 서정주 동천

10위 김수영 풀

 

영상으로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보고 싶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천상병 시인입니다. 당연히 ‘귀천(歸天)’이 수록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새’입니다. 

 

그래서... 잘 아시겠지만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을 덧붙입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깊은 가을, 한국시집박물관에서 시대별 시인들의 시() 세계를 살펴봤습니다. 세련된 건축물에 멋진 전시실... 좋은 곳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자녀들과 편안하게 둘러보시길 권합니다. 

 

 

한국시집박물관

강원 인제군 북면 만해로 136

지번; 북면 용대리 1099-15

033-463-4082

 

 

사족

시집 박물관, 아쉬움이 있다면...

간단히 정리하면, 시인들의 육필 원고나 펜 등 시인들의 흔적을 좀 더 볼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입니다. 부천시에 있는 한국만화박물관은 유명 만화가들의 원고, 사용했던 펜, 작품집 등등을 볼 수 있는데... 깔끔하고 세련된 전시 구성이 나무랄 데 없으나 시인들의 흔적을 볼 수 있는 별도의 코너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잘 다녀와서 이런 얘길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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